[공인중개사 합격수기] 알콜애호가 25년차 언론인, 동차합격으로 야간반의 전설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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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콜애호가 25년차 언론인, 동차합격으로 야간반의 전설이 되다

 

합격노하우

나는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에 도전하기까지 25년 정도 중앙 언론사에 근무하면서 날마다 다가오는 정년과 그 이후에도 자신감 넘치는 활동을 꿈꾸어 왔으나 자기 계발을 위한 투자에 적극적이지 못했다. 마음으로만 걱정하고 몸으로는 매일 더블헤더 술자리(점심때도 술, 퇴근길에도 술)로 일과를 마무리하는 생활의 연속이었고 연간 소주 소비량이 700병이나 될 정도로 알콜 애호가였다.


집에는 대학생과 고2 자녀가 있었지만 공부하라는 잔소리 안하고 잘되기만 바랄뿐 나 자신은 아이들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아빠는 매일 취한 모습만 보일 수 없어 뭔가 변화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하면서도 변화할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


첫 공부를 하던 해 5월초 어느 날 회사 직원과 함께 업무 출장 중에 학원 현수막을 보고 “바로 이거야”하면서 즉시 학원에 가서 야간반에 등록을 했다. 등록일 이후 단 한 번도 강의를 거른 일이 없었다. 나에게는 매일 출석을 점검하는 관리 시스템이 나로 하여금 강의시간에 충실할 수 있도록 계기를 마련해 주어 매우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야간반은 주간에 직장에서 근무하고 퇴근 후에 공부해야 된다는 어려움 외에도 언론사에 근무하다 보니 긴급한 상황에는 현장에 있어야 하는 어려움과 야간 강의가 저녁 늦게 종료되어 힘들었고, 몇 번 정도는 포기하고 싶은 생각도 없지 않았지만 평소 담배 하나 제대로 끊지 못한다는 핀잔을 자주 듣는 나는 이것만큼은 꼭 성공하고 싶은 오기가 발동했다.
기왕 시작한 일이고 새로운 나를 발견하고 싶은 욕심으로 학원 강의만큼은 빠질 수 없다는 신념을 굳건하게 지키면서 열중했지만, 시작 시점이 5월이어서 전년도 11월부터 공부를 시작한 다른 원생들과 보조를 맞추기에는 기초실력이 너무 부족하여 그해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는 낙방하였다.

 



일천한 실력으로 합격을 기대했던 자신을 부끄러워하며 동반 낙방한 동료들에게 전화를 하여 “포기하지 말자”고 설득하고 결국 몇몇 동기들과 동시에 다시 학원 등록하고 11월부터 강의에 집중했다.


직장생활을 하면서 공부에 집중하기 위해서 가정사와 친척집 대소사 참석은 아내에게 위임하다보니 친척들이 가정에 문제가 있는 것 아닌가 하고 염려할 정도로 철저하게 공인중개사 시험 준비에 몰두했다.


“민법 강의는 귀에 딱지가 앉을 정도로 들어야 된다”는 말에 공감하고 회사 업무차 출장길에도 차에 노트북을 탑재하여 운행 중에도 동영상 강의를 반복 재생하여 들었고 노트북의 도난 방지를 위해서 차량에 밖에서 들여다볼 수 없을 정도의 진한 썬팅까지 했을 정도다.


나는 강의실의 가운데 줄 앞에서 세 번째 자리를 독점했는데 이 자리는 주간에는 주간반 반장이 독점하던 자리였으나 저녁 강의시간과 토요일 강의 시간에는 내가 그 자리를 선점하였다. 이 자리를 선점하기 위해서 학원 주변의 모텔에서 잠을 잔적도 있을 정도로 나 자신을 압박했고 항상 강의에 집중하다 보니 자세의 흐트러짐이 없어 나의 뒷자리에 앉은 어느 수강생은 옆자리 수강생에게 “저 수강생은 뒷모습이 너무 무섭다”는 얘기도 전해 들었고 또 다른 수강생은 ‘돌부처’라는 별명을 붙여 주기도 했다.


다섯 명의 동료들과 스터디그룹을 만들어 상호간에 격려하고 매일 제공되는 일일모의고사부터 집중하였으나 강의시간에 충분히 이해를 하고 기억을 해도 다음 강의시간에는 머릿속에 남는 것이 없는 상황이 반복되고 이런 상황이 계속될 경우 또 낙방이라는 불안이 엄습해 왔고 이를 극복하기 위한 특단의 대책이 절실 하던 시기에 세법 교수님이 강의시작 전에 야구소식을 잠깐 전하면서 강의를 시작 하셨는데 두뇌의 기억 영역에서 자꾸만 달아나려는 학문을 야구장에서 투수가 주자에게 견제구를 자꾸 날리는데서 힌트를 얻어 나의 기억 영역을 벗어나려는 학습 내용에 대해서 견제구를 날리지 못하면 나는 패배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깨닫고 반복학습으로 극복하겠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결국 강의시간에 강의에 집중하면서 중요한 내용에 대해서 메모를 빠뜨리지 않았고 집에 도착해서는 30분정도 강의내용을 복습하고 자정 무렵에 저녁을 먹는데 매일 소주 한 병을 마시고 잠자리에 들었다. 저녁 강의에 집중하느라 졸음을 떨쳐버린 상태이지만 다음날 아침 출근을 위해서는 강제수면이 불가피했기 때문이다.


또 개강 초기부터 학원과 교수님을 100% 신뢰하자는 생각을 했고 학원에서 제공하는 일일모의고사와 입문서는 교수님의 설명을 메모하여 차곡차곡 모아 두었는데 이것은 심화과정에 진입하면서 막히는 경우에 다시 읽어보면 그동안 이해가 부족한 상태였거나 희미했던 기억이 되살리는데 많은 도움이 되었다. 한번 선택한 학원강의와 교수님은 흔들리지 않고 끝까지 믿고 가는 것이 합격을 위한 길인 것 같다.

 



토요일, 일요일에는 한주간의 강의 내용을 빠짐없이 메모하고 이를 토대로 pc에 입력하면서 복습을 하고 나만의 정제된 노트를 만들어 갔다. 나의 노트는 반복적으로 이루어지는 강의에서 새로운 내용과 교수님이 중요하다고 강조한 내용은 물론 실제로 문제가 출제될 경우 주의해야 될 부분들까지 계속 추가되어 완성도를 높여 갔다. 이 노트는 교수님의 강의 내용이 전체적으로 녹아들어 있어서 반복적으로 머릿속에 되새김하는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하고 출력하여 1차 과목(민법과 부동산학 개론)과 2차 과목(중개사법, 공시법, 공법) 으로 나누어 제본을 하고 항상 몸에 휴대하면서 활용할 수 있었다.


모의고사 문제풀이 과정에 들어서면서 ‘이제부터는 합격을 연습해야 된다’는 생각은 하였으나 학원에서 요일별로 한 과목씩 강의를 듣고 예․복습하는 패턴만을 계속 유지 한다는 것이 상당한 문제점을 안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일주일 총 168시간의 학습 시간을 시험에 주어지는 시간만큼으로 집약하는 방법의 전환이 필요하다는 생각으로 일요일에는 나만의 스타일로 하루에 전 과목을 공부하는 방법으로 전환하였다.


공부 방법의 변화에 따라서 기억력이 향상되고 공부의 효율성이 향상 되는 성과가 있었고 점진적으로 시험이 진행되는 시간대에 맞추어 해당 과목을 집중적으로 공부하는 방법으로 시험에 대한 적응력을 키워 나감과 동시에 공부에 동원된 방대한 자료들을 축약해야 된다는 생각으로 시간이 날 때마다 시험 직전의 짧은 시간에 다시 복습할 수 있는 필살기와 같은 자료를 준비해 나갔다. 별도로 준비한 자료는 컨닝페이퍼에 버금가는 자료라고 자부했는데 이 자료는 1차 시험 시작 직전에 읽어 볼 수 있도록 꼭 필요한 부분, 주의해야 할 부분, 필수 암기사항을 수록했다. 2차 시험을 대비하여 같은 방법으로 별도의 자료를 만들어 대비하고 실전과 같은 시간대에 실전 연습을 반복적으로 해 나갔다.


연차 휴가는 물론 시험 시작 일주일 전에 사용하여 두문불출하면서 총정리와 함께 시험 준비를 하고 있는데 지금까지의 모든 과정이 물거품이 될 만큼 엄청난 위기를 맞았다. 바로 내일이면 시험인데, 모든 준비를 마치고 마지막 실전 연습을 하고 휴식을 취할 계획이었는데 09:00경에 정신이 혼미해지면서 쓰러지고 만 것이다.


이에 놀란 가족들이 부축하여 병원에 입원을 시켰고 의사는 과로로 진단하여 시험을 포기하고 충분한 휴식을 취하라고 종용했다. 그러나 나는 시험을 포기할 수 없다며 맞섰다.
나의 간절한 주장에 의사는 3시간정도 되는 링거액을 좀 더 짧은 시간에 투여해 주었고 투여가 거의 끝날 때 쯤 정신이 맑아지면서 온몸에 기력이 되돌아왔다. 가족들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오후에 마지막 총정리를 마치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드디어 2010년 제 21회 시험일 아침이 밝았다.


평상시 연습한 것처럼 미리 준비한 필살기 자료를 1차 시험 직전에 빠른 속도로 넘기면서 최종 점검을 하고 암기할 부분을 최종적으로 점검하고 시험지를 받아 암기사항이 많은 과목부터 문제를 풀어 나갔다.
2차 시험 또한 같은 방법으로 시험을 준비하고 암기사항이 많은 과목부터 침착하게 해결하여 전 과목 60점 이상 획득하고 동차 합격하는 영광을 얻었다.


시험을 마치고 배포되는 정답과 비교하면서 가채점을 하는 동안 입안이 타들어가는 긴장감도 맛보았지만 합격을 확인하는 순간 지나간 고생과 우여곡절은 온데간데없이 터질 것만 같은 가슴 벅찬 기쁨을 만끽하였고 야간반의 전설이라는 새 별명도 얻었다.

 

공인중개사 시험을 통해서 소중한 자격증을 얻은 것 외에도 밤늦은 시간까지 식탁에서 복습하는 나의 모습을 지켜본 고3 아들이 “아빠의 열공하는 모습에 감동받았다”면서 자신도 대학입시에 매진하여 유명대학에 합격하여 국가장학생으로 대학을 마치고 현재는 국비유학생으로 미국 유학중인데 내가 공인중개사 공부에 열중하는 모습이 아들에게 좋은 모습으로 비춰졌고 이는 아빠와 아들 사이에 ‘공부하라’는 잔소리 하지도 않고 듣지도 않으면서 좋은 결과를 가져왔다는 점에서 공인중개사 시험에 도전했던 나 자신이 나의 인생에 있어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자부하고 합격을 위해 애써주신 학원과 교수님들께 감사드린다.

 

앞으로의 계획
공인중개사로서 부동산 중개업 개업을 목표로 하고 있지만 넘쳐나는 부동산 속에서 특별한 경쟁력이 없으면 살아남기 어려운데 부동산 시장의 미래는 시장개방과 거대 자본의 시장 진입이 불가피한 상황인지라 수도권지역에서 더 큰 경쟁력을 갖고자 하는 공인중개사를 규합하여 급변하는 시장에서 남다른 경쟁력을 바탕으로 성공하는 길을 열어가기 위하여, 뜻을 같이하는 회원과 함께 수도권부동산중개네트웍의 창립을 준비하고 있으며 사이트가 오픈되면 공동으로 고객을 유치하고 공동체 정신을 바탕으로 사회에 봉사도 할 줄 아는 부동산중개업자 단체를 만들 계획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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